The Bass Talk! 남두영의 콘트라베이스 이야기

베이스 etc

콘트라베이스 작곡가 3인

조회 수 4869 추천 수 0 2010.08.26 00:30:31
베이스를 공부하다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세사람입니다. 꼭 이사람들의 경력을 다 알아야만 할필요는 없지만 한번 보아두시는것도 나중에 협주곡들을 공부할때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1. Domenico Dragonetti (1763.4.7-1846.4.16)
2. Giovanni Bottesini (1821.12.22-1889.7.2)
3. Serge Aleksandrovich Koussevitzky (1874.7.26-1951.6.4)




1. Domenico Dragonetti (1763.4.7-1846.4.16)

드라고네티는 더블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이발사 아버지를 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을수 없었던 그는 독학으로 기타와 더블베이스를 연습하며 음악을 시작하게 됩니다. 같은동네에서 구두를 만드는 Sciarmadori라는 사람에게서 바이올린에 대해 약간의 기초를 배웠고 이를 베이스에 응용하기도 했고 그후 12살 때 Michele Berini에게 사사받았고 13살때는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베이스 주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14살때는 the Grand Opera Seria에서 수석베이스주자가 되었고 그후 St. Mark 성당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로는 바이올리니스트인 Nicola Mestrino가 있는데 둘은 함께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습방법에대해 연구하고 "Capricci"와 그밖에 다른 몇 개 의 짧은 소품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1794년 9월16일에 드라고네티는 베니스를 떠나 그의 나머지 일생을 보내게 될 런던으로 이 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여러 연주회에 솔리스트로 참가했고 1798년에는 비엔나에서 하이 든을 만나고 돌아오기도 했고 1808년에는 베토벤과 만나기도 합니다. 그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Op.5-2를 작곡가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1804년 이후로는 첼리스트인 Robert Lindley와 함께 영국의 여러 음악페스티발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보다 많은 명성을 쌓게 됩니다.

드라고네티 역시 보테지니처럼 3현 베이스를 사용했는데 보통 오케스트라 튜닝을 사용했답 니다. 그는 또 죽기까지 여러 악기들을 수집하였는데 그가 죽고난후 그의 호텔 방에서는 여섯 대의 베이스 다수의 바이올린, 첼로, 하프, 기타등등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은 그의 자필 악보로 현재 대영박물관에서 소장되어 있으며 열권 분량의 베이스곡들과 30곡이 넘는 더블베이스가 들어간 현악 오중주, 그밖의 실내악곡등이 있습니다.

2.Giovanni Bottesini (1821.12.22-1889.7.2)

보테지니는 더블베이스 작곡가이자 연주자 그리고 당대의 유명한 지휘자로 1763년 이태리 베니스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클라리넷주자 겸 작곡가로 그에게 음악에 대한 기초를 가르쳐 주었고 11살때는 합창단에서 노래했으며 한때는 팀파니 주자로도 일했습니다. Carlo Cogliati에게 바이올린을 사사받았고 1835년에 그의 부친이 Milan Conservatory에 그를 입학시켰는데 당시 이 음악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을수 있는 자리는 바순과 더블베이스 두가지 뿐이었고 이런 계기로 더블베이스를 처음 만나게 된것이죠. 그후 보테지니는 타고난 음악성으로 베이스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않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그해 11월에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잘 알려진 롯시니와 함께 음악을 공부하기도 합니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그후 계속적으로 빛을 발해 1839년에는 연주콩클에서 받은 300프랑의 상금을 가지고 솔로 활동을 위해 학교를 나오게 됩니다. 그는 이 돈으로 Carlo Giuseppe Testore가 만든 악기를 구입합니다. 이악기의 특징은 사진에 보시는 바와 같이 3현에 현재 의 솔로 튜닝에서 처럼 오케스트라 튜닝보다 한음 높은 (F#)-B-E-A의 튜닝을 사용하게 됩 니다.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 보테지니가 최초로 지금 프랑스식 활로 알려진 활대 위에서 활 을 잡는 형식의 활을 사용하였고 1849년에 가진 그의 연주회는 상당한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후 그는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베이스 주자로 초빙을 받았고 그 러던 중 베니스에서 잘알려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를 만나 그후로 평생동안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보테지니는 베이스의 파가니니라고 칭송 받으며 유럽과 미국등지에서 연주활동을 가졌지만 한편으로 그는 지휘자로서도 많은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잘 알려진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 다"의 초연에서의 지휘를 맡았으며 다수의 베이스를 위한 협주곡과 소품들 그밖의 현악사중 주등의 작곡에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보테지니의 가장 큰 업적이 라고 한다면 현대 사용되는 많은 더블베이스의 테크닉들을 개발하고 또 그것을 응용한 많은 베이스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어려워 연주할수 있을만한 사람이 많지 않 은 것이 흠이긴 하지만서도요.

3. Serge Koussevitzky (1874.7.26-1951.6.4)

러시아 출신의 베이스 연주가, 작곡가로 쿠세비스키는 사실 베이스 주자로서보다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명지휘자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 태생의 그는 열네살 때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더블베이스를 전공하게 됩니다. 1896년에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에 베이시스트로 자리잡게 되면서 부터는 다수의 솔로 연주회를 가지고 유럽전역에 순회 연주회를 갖게 됩니다. 1907년에는 전설적인 지휘자 니키쉬에게서 지휘법을 사사받았고 베를린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됩니다. 그후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지휘자로서 그의 공식적인 데뷔를 했고 이 연주회이후의 계속적인 성공에 힘입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가 됩니다.

1909년에는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여러곳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스크레아빈의 프로메테우스등을 초연하는등의 활동을 합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후 그는 소련 연방을 떠나 베를린, 로마, 파리등으로 이주하며 연주회를 하는데 이때 라벨 편곡의 무조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초연하게 됩니다.(원곡은 무조르그스키의 피아노 곡입니다. 잘 알려진 관현악곡은 라벨이 편곡한 작품이죠.) 1924년에는 미국으로 와 몬트와의 뒤를 이어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게 됩니다. 미국에서 그는 미국의 근대 작곡가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 바버, 코폴랜드, 핸슨, 헤리스 등의 작곡가의 작품들을 정기적으로 연주하게 됩니다. 1935년이후에는 Berkshire Music Center를 설립하여 후학들에게 지휘법을 강의 하게 됩니다. 이당시의 학생중에는 역시 잘 알려진 지휘자인 번쉬타인도 끼어 있었답니다. 1941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그의 부인이 세상을 뜬 다음해에는 쿠세비스키 음악재단을 설립 전 세계의 새로운 작품들을 발굴 연주하게 됩니다. 이 재단의 도움으로 잘알려진 영국의 작곡가 브리튼의 오페라 작품인 피터 그라임스가 초연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 1950년에는 처음으로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였고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다수의 레코딩을 남겨 보스톤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세계에 알리고 그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 했습니다.

그가 사용하던 1611년에 만들어진 아마티의 베이스는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두 번째 부 인인 Olga naumov에의해 Gery Karr에게 기증 되어졌습니다. 이 베이스는 현재 남아있는 연주가능한 아마티의 유일한 베이스로 게리카의 거의 모든 레코딩이 이 베이스를 이용해 녹 음되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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